부산 여행을 계획하다 보면 옆 도시 김해를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남편과 함께 들렀다 완전히 반해버린 곳이 바로 김해입니다. 부산의 소란스러움에 지쳐 있다면, 김해는 생각보다 훨씬 다른 여행을 선사해 줍니다.

역사 도시 김해, 부산 옆 도시인데 다른 이유
일반적으로 부산과 가까운 도시라고 하면 비슷한 분위기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저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가보니 전혀 달랐습니다.
부산은 해운대든 서면이든 어딜 가나 차 막히고 사람에 치이는 고밀도 관광 도시입니다. 여기서 고밀도란 단위 면적당 유동 인구와 관광 인프라가 집중된 상태를 말하는데, 쉽게 말해 가는 곳마다 붐빈다는 뜻입니다. 반면 김해는 시내 중심부를 벗어나면 눈에 띄게 한산해집니다. 제가 직접 다녀봤는데, 주말임에도 수로왕릉 일대는 여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사람이 없었습니다.
김해는 가야 왕국의 수도였던 역사 도시입니다.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수로왕릉은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능으로, 사적 제73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출처: 문화재청). 실제로 걸어보면 돌담길이 길게 이어져 있어 서울 덕수궁 돌담길과 분위기가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왕릉 뒤편 공원까지 포함하면 전체를 둘러보는 데 한 시간 이상 걸릴 만큼 규모가 생각보다 큽니다.
교통 접근성도 생각보다 괜찮습니다. 김해공항에서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고, 관광지 간 거리가 멀지 않아 택시비가 5,000원 내외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짚어둘 점이 있습니다. 김해 외곽 지역은 대중교통 접근성이 떨어지는 구간이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 부분은 뚜벅이 여행자에게 분명히 한계로 작용합니다. 가능하다면 렌터카를 이용하는 편이 훨씬 유리합니다.
김해 맛집, 밀양 돼지국밥부터 만두까지 먹어봐야 알 수 있는 것들
김해 맛집 하면 돼지국밥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돼지국밥은 부산 음식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김해에서 먹어보니 밀양식 특유의 방식이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밀양식 돼지국밥의 핵심은 육수의 농도 조절 방식에 있습니다. 여기서 농도 조절이란 뼈를 우려낸 시간과 불 조절로 국물의 진함과 잡내 제거 수준을 결정하는 조리 기법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국물이 진하면서도 깔끔한, 얼핏 상반된 두 가지를 동시에 잡아낸 방식입니다. 남편과 저 둘 다 여행 가는 곳마다 그 지역 국밥을 찾아 먹는 편인데, 김해 밀양 돼지국밥은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맛이었습니다. 고기도 야들야들하고 잡내가 없어서 국밥을 처음 먹는 사람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두 맛집 얘기도 해야 합니다. 남편이 만두를 워낙 좋아해서 김해 다문화 거리 안에 있는 50년 된 만두 전문점을 찾아갔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군만두는 만두피가 얇고 부드러워서 일반적인 바삭한 군만두와는 식감 자체가 달랐고, 찐만두는 샤오롱바오처럼 육즙이 꽉 차 있었습니다. 남편이 "다음에 또 김해 오면 꼭 다시 가야 한다"고 했을 정도니 그 말이 더 정확한 평가일 것 같습니다.
김해 다문화 거리는 따로 언급할 만한 공간입니다. 우즈베키스탄 식당, 중앙아시아 빵집, 다양한 외국 식재료 상점들이 모여 있어 마치 다른 나라에 온 듯한 이색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경남도 외국인 주민 현황 자료에 따르면 김해시는 경남에서 외국인 주민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로, 다문화 집적 지구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배경이 여기에 있습니다(출처: 경상남도).
김해 여행에서 식사 코스를 짠다면 이 순서를 권합니다.
- 밀양 돼지국밥으로 든든하게 첫 끼 해결
- 수로왕릉 관람 후 돌담 뷰 카페에서 휴식
- 다문화 거리에서 만두와 이색 음식 탐방
- 연지공원에서 야간 음악 분수 관람
렌터카, 있으면 훨씬 넓어지는 여행
뚜벅이로도 김해 여행이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제가 직접 다녀본 결과, 수로왕릉-다문화 거리-연지공원 구간은 택시와 지하철을 조합하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이 동선에서 멈추게 됩니다.
렌터카 여행의 장점은 김해와 부산 외곽 지역을 묶어서 움직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부산 외곽 지역이란 해운대나 서면 같은 중심부가 아닌, 기장, 대저, 낙동강 일대 등 비교적 덜 알려진 지역을 말합니다. 요즘 이쪽으로 분위기 좋은 대형 카페와 숨겨진 맛집들이 많이 생겼고, 계절을 잘 맞추면 봄 벚꽃이나 가을 억새밭, 핑크 뮬리까지 볼 수 있습니다. 핑크 뮬리란 가을철 분홍빛으로 물드는 관상용 억새 식물로, 최근 인생 사진 명소로 각광받고 있는 경관 식물입니다.
김해 자체가 한식 맛집의 집적도가 높은 도시입니다. 멸치쌈밥, 돼지국밥, 만두 외에도 지역 특색 있는 한식당들이 곳곳에 있어서 식도락 중심의 코스를 짜기에 적합합니다. 한식 위주로 동선을 잡고, 사이사이 수로왕릉이나 연지공원 같은 관광지를 끼워 넣으면 하루 혹은 1박 2일 코스로 딱 맞아떨어집니다.
김해가 조용하다는 말, 처음엔 그냥 흘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다녀보고 나서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부산의 에너지가 필요한 날도 있지만, 김해처럼 숨을 고를 수 있는 여행지가 가끔은 더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이번 봄, 복잡한 관광지에 지쳐 있다면 김해를 한 번쯤 진지하게 고려해 보시길 권합니다.